협회 본부

세르반테스 '돈키호테'와 김용진 '행복 코디네이터'

작성일 : 2020-11-02 21:34

돈키호테를 제대로 알면 행복 코디네이터가 보인다.
코로나 시대의 치유자 행복 코디네이터 운동과 돈키호테 정신 닮은 점.

 

 

김용진 행복교수

국제웰빙전문가협회 협회장

신직업 '행복 코디네이터' 창시자

뉴스포털1 전국방송취재본부장

 

 

스페인의 문호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를 소설로 등장시켰고, 대한민국 행복멘토 김용진은 '행복 코디네이터'를 직업화 시키고 있다. 

 

가난한 집안에서 6남매 중 넷째로 태어난 세르반테스는 밑바닥까지 고달프고 서러운 인생살이 경험을 토대로 58살에 돈키호테를 문장으로 표현했다. 춥고 가난한 소작농의 자녀 6남매 중 다섯째로 초가집에서 살던 김용진도 17세에 전국 최연소 계몽사 세일즈맨으로 고달프게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58살이 된 현재까지 삶의 농축을 행복 프로그램으로 담아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이제는 행복 코디네이터 책임교수를 육성하며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행복 프로그램들로 현실화되고 있다. 58세의 세르반테스가 소설에서 상상력으로 구현한 돈키호테가 약 480년이 지난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대한민국에서 58세 김용진에 의해 행코 책임교수들로 말이다.

 

대중은 자기만의 결단으로 정의의 칼을 뽑아 들고 독선적 리더로 달려가는 무대포 돈키호테라고 생각하겠지만, 정작 세르반테스의 행복 코디네이터 철학을 농축시킨 이 소설은 근대소설의 아버지로 평가 받는다.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돈키호테를 능가할 소설은 없다"고 했고, 르네 지라르는 "돈키호테 이후의 소설들은 돈키호테의 후속작품에 불과하다"고 호평하였다. 실제로 2002년 세계54개국의 비평가와 소설가들에게서 1위의 자리를 차지한 문학작품이다. 돈키호테를 제대로 아는 사람들은 성경에 버금가는 최고의 소설작품이라고 평가한다.

 

그것은 돈키호테가 허황된 꿈을 찾아다니는 몽유병자 같은 비현실적 사람이 절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부조리하고 비인간적인 대우로 불행을 겪게 하는 현실 변혁의 개척자요 선구자였다. 돈키호테는 가난하고 병약한 밑바닥 서민들의 행복을 위해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며 지치지 않고 말을 타고 달렸던 초야의 광인이었다. 

 

그러한 돈키호테의 열정은 결국 욕심많고 식탐 많던 무식쟁이 산초 한 사람을 변화시키는 초라한 성적표였다. 그러나 돈키호테를 만나 의식이 리모델링 된 산초는 돈키호테의 협력자가 됨으로서 훗날 바라타리아 섬 사람들이 놀림거리로 산초를 섬의 통치자로 세웠지만 놀랍게도 산초는 그 섬을 유토피아가 되게 만들었던 것이다.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를 통해 세상의 변화를 모색했고 그러한 노력이 산초에 의해 결실을 보았다는 소설의 이러한 트로피적 스토리는 책장의 책 한권으로 끝나지 않는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아노미에 처해져가는 대한민국의 불행한 현실을 극복하고 행복 파파게노 운동을 가일층 벌이고 있는, 국제웰빙전문가협회(http://kangsanews.kr) 행복 코디네이터 책임교수들로 꾸준히 복제되고 있다고 해도 될 듯 싶다.

 

세르반테스가 집시족처럼 떠돌이 생활을 해야만 하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까닭에 힘든 청소년기를 보냈듯, 김용진의 삶도 땅 한평 소유하지 못한 소작농의 자녀로 태어난 까닭에 흙수저의 청소년기 고학생의 고달픔과 배고픔과 서글픔을 수돗물로 채워야 했었다. 세르반테스와 김용진을 비교해보고 싶은 이유는 이 두사람의 철학이 행복철학이었고 행복한 세상에 대한 갈망이었기 때문이다.

 

돈키호테 9장에서 소개하듯, 세르반테스는 작은 종이쪼가리라도 주우면 반드시 몇 번이고 읽고 또 읽었던 독서광이었고 그러한 열정은 결국 르네상스문학에 심취하게 했다. 세르반테스가 군생활 중 터키 해적의 공격으로 포로가 되어 5년간 노예의 삶을 살다가 구출되었는데, 그 기간동안 그가 생각했던 주제는 인간에 의한 인간의 구속과 폭력이라는 비인간화 현실에 대한 자유롭고 행복한 삶이 돈키호테라는 대소설로 꽃 피웠다.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를 출판할 당시의 스페인은 종교적으로 매우 엄격한 가톨릭 종교재판소가 맹위를 떨치던 종교중심국가였다. 유럽은 가톨릭의 숨막히는 통치로부터의 자유와 해방을 부르짖는 르네상스 바람이 태풍처럼 번졌으나, 스페인은 34만명 넘게 종교재판에 회부하는 만행으로 민초들의 숨소리까지 통제해 버렸다. 이 때 부모가 개종한 유대인인 세르반테스는 유대인 종교지도자인 랍비, 스페인왕궁의 경비병, 스페인 군인, 아니면 거지가 되는 길 중에서 한 가지만 선택할 수 있었을 정도로 자유는 제한되었다. 천동설을 가르치던 가톨릭 교리에 위반되는 지동설을 주장하던 갈릴레이를 스페인 종교재판소가 로마교황청에 사형을 의뢰했을 정도였으니 결과는 어떠했을까? 이렇게 근본을 벗어난 종교의 잘못된 만행으로 스페인은 100년의 영광도 누리지 못한채 몰락의 길을 걷고 말았던 것이다. 

 

400여년이 지난 지금 스페인은 매년 4월 23일을 돈키호테 기념일로 삼는다. 스페인의 심장부인 마드리드의 스페인 광장에서 가장 높은 동상이 세르반테스이고 그 양쪽에 돈키호테와 산초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그 당시에 냉대받던 세르반테스 무리가 지금은 스페인의 대표인물로 추앙받는다.

 

왜 돈키호테 신드롬이 지금도 스페인과 유럽을 들썩거리는가? 그것은 세르반테스의 확실한 휴머니즘이 돈키호테라는 소설 안에 넉넉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인간 존재의미와 삶의 방식, 사회체제의 모순점, 정치경제의 불합리한 측면들에 대한 고발만 아니라 후마니타스를 자성하게 하는 강력한 메시지가 배꼽을 잡게 하는 해학적 묘사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의 입을 통해 개명작업을 진행했다. 비쩍 마른 평범한 말에게 우수한 명마라는 뜻인 로시난테라는 이름을 붙였다. 돈키호테의 귀부인격인 여인도 둘시네아라는 호칭을 선물했다. 이름도 없이 평범하던 자신에게 돈키호테라고 스스로 이름하여 불렀다. '인간은 자기경영 주체로서의 실존'이라는 세르반테스의 실존주의적 철학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인간이란 혈통이나 가문의 영향을 받기는 하지만 결국은 자기가 만들어가는 인생이라는 것이다.

 

국민행복강사 김용진이 행복 코디네이터를 통해 확산시키는 것은 운명론이나 숙명론에 대한 강력한 저항운동이다. 그것은 데카르트의 사유적 존재가 인간이라는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며, 세르반테스의 행동적 존재가 인간이라는 의견에 동조하는 삶의 혁명이다. 세르반테스가 소설을 통해 해학적으로 드러낸 묘사, 즉 돈키호테가 풍차를 보고 거인이라고 말하며 돌진한다거나, 한가로이 풀을 뜯어 먹는 양들을 적군이라고 외치며 돌격하는 것은 단순히 우스꽝스러운 일이라고 폄하할 일은 아니다. 그 속에는 스페인 국민들을 짖누르고 있는 정치와 종교권자들의 폭압에 대한 미치광이로 묘사한 돈키호테의 개혁의 몸부림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돈키호테가 죽은 후 묘비에는 이렇게 기록이 남겨졌다. 이 짧지 않은 묘비글에는 유한적 존재인 인간의 부족함과 서글픔, 그리고 정신 차리고 살 것에 대한 요청 등, 행복 코디네이터 문학가 세르반테스의 잘 익은 인생론이 농축되어 있다.

 

"그 담대함이 하늘에 도달한/ 강인한 사람이 이곳에 누웠다./ 죽음을 통해서도 죽음이란 놈은 그를 이기지 못했다./ 그는 이 세상을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다./ 세상은 그를 무서워 했다./ 그는 미치광이로 살다가 정신을 차리고 죽었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누가 필요할까? 대한민국은 온통 코로나19 블루로 인해 무너지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이 앞으로 1년만 더 지속되면 가정경제 대부분은 파탄날지도 모른다. 그리고 국민 우울감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정권타도를 외치며 광화문으로 몰려든다고 한들, 또 새로운 정권이 등장한다고 한들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국민정서는 미래만 아니라 당장 해결해야 하는 눈앞의 생계유지 고민으로 우울의 늪으로 빠져들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마치 브레이크가 파열된 고속열차처럼...

 

불의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빈약한 자들의 도우미가 되겠다고 모험을 떠난 기사 돈키호테 데 라만차는 행복 코디네이터가 맞다. 돈키호테는 자신의 증조부가 입던 낡은 갑옷을 걸쳐입고 말을 타고 용감하게 내달렸다. 당장 먹고 사는 문제로 인상을 찌푸리는 사람들에게  '감사-존중-나눔'이라는 우리 조상들의 잊혀져가는 미덕을 되살리고 확산시키는 운동가들인 행복 코디네이터 책임교수와 사뭇 비교된다. 

 

돈키호테가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을 불사하고 도전하지만 결과는 승리보다 처철한 패배가 더 많았다. 그러나 이상주의자 돈키호테가 얻은 것은 산초라는 현실주의자, 이기주의자, 욕심에 가득차 있음에도 의리가 있는 행복 코디네이터 인턴들이었다. 지금 김용진과 국제웰빙전문가협회가 '행복한 세상 만들기-범국민운동추진 우수기관(사업장)'을 선정하는 등과 같은 일에 동참하는 일들이 바로 산초라는 협력자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대한민국의 희망은 코로나 백신이 전부가 아니다. 산초처럼 행복한 삶터로 바꾸는 개혁자 역할을 하는 달라진 사람들의 등장에서 근원적 희망이 있는 것이다. 세르반테스에게서는 산초가 그 모델이었고 대안이었다. 바라타리아 섬의 통치자가 된 산초! 세르반테스는 산초를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롤모델로 등장시켰다. 물론 세르반테스가 완벽히 현실을 극복하지 못하고 행복을 저해하는 우울증에 빠져 죽는 모습이나, 통치자의 삶을 마친 산초가 솔로몬의 인생허사가를 내뱉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에서 인간의 나약한 한계를 자성해야 한다는 것도 일깨우면서 말이다.

 

혼돈의 중세를 살아가며 고뇌했던 행복 코디네이터 세르반테스처럼 2020년대를 살아가는 김용진도 행복한 세상을 갈망하며 행복 설계도를 열심히 그려가고 있다. 이러한 노력이 완벽할수 없어서 우울증에 빠져 죽을거라고 선배 행복 코디네이터 세르반테스가 속삭이더라도, 이 일은 돈키호테처럼 무모하게 저돌적으로 돌격할 가치가 충분히 있는 일이라고 맞장을 뜰 생각이다.

 

돈키호테가 무모한 도전을 연속하다가 남긴 성과가 있다. 그가 바로 산초이다. 2000년부터 웰빙, 힐링, 행복을 위해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행복강사를 육성하고 이제는 행코 책임교수 1천명 육성이라는 비전으로 걸어가고 있는 김용진에게는 행복 코디네이터 책임교수들이 벌써 56명이나 합류했다. 그리고 그들 행코 책임교수들이 복제시키는 행복 코디네이터 인턴이나 준전문가들이 대한민국에서 산초의 역할을 하기 위해 숨고르기를 하고 있다.

 

이제 잠시 우리의 눈을 2년 뒤로 내다 보자. 백신으로 코로나가 잠재워지는 싯점이 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어떤 상황이 될까? 여전히 치유되지 못한 채 남은 코로나 트라우마가 정서적, 정신적, 신경증적 부분 등에서 대한민국 국민의 행복지수를 떨어트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육체적 기저질환자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안겨주었던 코로나 바이러스 그 자체보다 더 무서운 팬데믹으로 대한민국의 행복을 파괴하는 주범이 되어 있을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 누가 세르반테스의 열정이 복제된 돈키호테가 될 것인가? 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혹시 아닌가? 만일 당신이라면 나와 함께 뛰어 보면 어떨까? 내 나이 쉰 여덟밖에 안되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