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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칼럼1] 코로나 시대, 환난중인 비기독교인들이 도리어 걱정하는 일부 기독교

작성일 : 2021-02-02 13:18

국제웰빙전문가협회장, 행복 코디네이터 창시자

 

기독교가 대한민국에 전파된 후 일제탄압으로부터의 해방운동, 선진 교육과 현대적 의료 서비스를 비롯하여 대한민국이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서는데 기여한 긍정적인 역할은 한국근현대사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상당하다고 할 수 있다. 종교의 순기능은 비단 기독교만 아니라도 타종교에서도 가능한 부분이다. 그런데 코로나19가 등장하고 나서 유독히도 기독교의 순기능보다 부정적인 역기능이 부각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지난 1년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220시를 기준, 78,844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되어 격리되었고, 그들 대부분은 존엄사의 기본적 예우도 받지 못한 채 무려 1,435명이나 사망하여 화장된채 가족 곁을 영원히 떠나고 말았다.

 

괴물 코로나의 발작으로 인해 언택트 사회는 지속되고 있고, 강제 방역지침에 서민경제는 몰락하고 사람들은 크게 지쳐가고 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2일 오전 10시에 국회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지금 대한민국은 경제 양극화 심화, 불평등의 심화를 비롯하여 비일상적인 위기 상황이라고 지적하였듯이 심각한 상황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비기독교인들은 교회를 심히 우려하며 걱정하고 있다. 세상의 환난을 아파하며 감싸주는 역할을 해야 할 교회가 도리어 지탄과 우려를 받는 뜨거운 감자가 된 것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기독인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성경의 근본 정신으로 돌아가는 운동이 필요할 것 같다. 이스라엘의 역사와 신앙적 흐름을 통해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솔로몬이 죽은 후 야곱의 자손들은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분열되고 말았다. 이들은 남북한처럼 분단국가가 되었다. 남유다는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야웨신앙의 정통성을 고집하면서 북이스라엘 동포를 이방인으로 적대시 했다. 유다지파와 베냐민 반지파가 연합한 남유다는 예루살렘 성전에 금으로 포장하고 제사 지낼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에 급급했다. 그들은 거의 날마다 동물제사라는 명분으로 동물학살을 자행하면서 인간의 죄를 동물에게 뒤집어 씌었다. 그리고 예수가 사역했던 갈릴리지역을 이방인의 지역으로 멸시했다.


이렇게 반목하고 대립하고 갈등하는 민족은 망하고 만다. 북이스라엘은 앗시리아제국에 남유다는 바빌로니아제국에 의해 멸망되고 말았다. 이후 예루살렘의 상징이던 성전은 불타 버렸고 포로생활에서 이들이 붙잡은 것은 회당에서의 신앙을 전수하는 디아스포라의 삶이었다. 이들은 금빛나는 예루살렘 성전이 사라진 후에야 칙칙한 흙벽돌로 지은 작은 회당에서 신앙의 근본을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훗날 포로생활이 끝나고 귀환하자마자 이스라엘은 또 양분되었다. 하나는 느헤미야를 중심으로 예루살렘 성전을 솔로몬 성전 수준으로 화려하게 재건하는 사람들이었고, 또 한 부류는 갈릴리 지역을 중심으로 소박하게 회당을 세워가는 사람들이었다. 여전히 예루살렘 성전중심의 사람들은 자신들만이 의롭다고 생각했고, 성전제사에 참여하지 못하는 먼 곳 갈릴리의 사람들은 경멸하곤 하였다. 영적 교만이 그들의 DNA가 되고 만 것이다.


갈릴리는 바벨론과 이집트의 양대 문명이 통과하는 지역이었기에 예루살렘 사람들은 이방지역 갈릴리라고 판단하였다. 이렇게 갈릴리를 폄하했던 것에는 종교적 우월감이 내포된 영적 교만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유대교의 위선을 깨트리고 새로운 종교로 탄생시킨 예수는 어떤 태도를 취하였을까? 예수는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이 아닌 회당에서 신앙을 지켜나가는 갈릴리에서 자랐다. 예수의 공생애 사역 대부분도 금 빛 찬란한 예루살렘이 아니라 소외되고 차별받는 갈릴리 사람들과 함께였다.

 

예루살렘의 예수가 아니라 갈릴리 예수로서의 삶을 살아간 청년 행복 코디네이터인 예수는 부활후 승천하기 직전에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개혁적 삶을 선언했다. 그것이 곧 디아스포라의 삶이다. 예수 승천이후 초대교회는 모임을 통해 영성을 단련하고 디아스포라의 삶을 빛내기 시작했다. 그러한 결과가 바로 대제국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한 역사적 사건이다.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예루살렘 성전 제사 중심이 아니라 흩어지는 디아스포라이다. 그리스어 διασπορά  는 씨앗을 뿌린다는 의미를 갖는다. 어떠한 이유로 본래 있던 곳에서 다른 지역으로 흩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기독교 2천년 역사는 디아스포라의 역사이다. 땅끝까지 찾아가는 디아스포라 운동이 바로 기독교의 힘이요 역사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집요한 공격은 대한민국 공동체의 질서와 형식을 파괴하고 있다. 온라인으로 재택근무를 대체하는 온택트, 비대면 소통의 언택트 시스템이 평범한 듯 일상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까닭에 소통의 단절로 우울감은 상승하고 있으며, 경제적 손실도 엄청 크게 발생하고 있다.

 

교회도 코로나로 인해 피해를 받는 곳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데 코로나19의 장기전으로 가장 큰 충격을 받는 곳이 또한 교회라고 할 수 있다. 교회는 예배 모임을 근본으로 삼고, 또 예배를 통해 헌금 수입으로 교회의 여러 일들을 진행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교회와 관련된 일부 시설에서 코로나 확산의 매개체가 되기도 하여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 지금 온 국민의 신경은 매우 날카롭다. 서민경제는 파탄지경이고 상가들마다 폐업이 줄을 잇고 있다. 상당수 국민은 빚으로 하루살이 연명을 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교회를 비롯한 종교기관에 의지할 여지마저 코로나 확산지가 됨으로 인해 상실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향후 1년간 더 거리두기 방역지침으로 집합금지가 진행되면 교회의 절반 이상이 폐쇄될 것이라고 말한다. 2020년대 4차산업혁명시대 심리적 안녕감을 제공할 교회와 같은 종교의 순기능이 상당부분 약화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참 안타까운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의 디아스포라 정신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금으로 치장된 예루살렘 성전에서 동물 제사 중심의 열정을 비판했던 예수의 기본 마음을 살펴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예수가 예루살렘 성전 회복을 외치기는커녕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예루살렘 성전이 몽땅 무너질거라고 선포했던 그 뼈아픈 메시지의 핵심을 성찰해야 한다.

예수는 진정한 이웃사랑의 정신을 잃어버린 종교인들이 형식적 습관에 따라 모임을 갖는 예루살렘 성전 시대의 종식을 선언하였다. 그리고 내 이웃에 대한 관용과 포용과 적극적인 사랑을 실천하는 디아스포라 운동을 주창했다. 이러한 정신으로 예수는 갈릴리 지역을 3년간 순회하면서 제자를 선발하고 훈련시켰고, 예수의 그러한 정신을 이어받은 사람들이 에클레시아 즉 교회라는 공동체로 확장시켜 나갔던 것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코로나19의 구덩이에 빠져 죽어가는 이웃의 아픔에 함께 하고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지는 못하더라도, 그들에게 생존의 희망을 꺾는 코로나 확산이라는 실수를 혹시라도 범하지 않도록 신앙인으로서 행동거지를 정말 조심해야 한다. 자신의 종교적 의로움에

세뇌되어 자가당착에 빠지지 않고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로움이 필요하다. 사마리아 이방인의 친구로 살아갔던 예수의 삶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