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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기일

  • 조옥성
  • 2023-04-25 06: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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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기일

수필가 조 옥 성

 

 

  오늘은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지 만 16년이 되는 기일이다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새벽잠이 없는 나는 일찍 일어나 환기를 하려고 빡빡한 베란다 창문을 열었더니 산 아래쪽에서 세찬 바람과 함께 장맛비도 아닌 소나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오늘은 어머님의 기일이라 내심 걱정이 되었다가실 때도 그칠 줄을 모르는 비가 종일 내리더니 오시는 날에도 왜 이렇게 비가 쏟아지나 하고 혼자 중얼거리고 있는데큰형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오늘 어머님 기일이니 밤 열시에 모두 만나자고 알리는 통보의 전화였다큰형은 내가 늘 바쁜 데다 더구나 주말이어서 이런저런 행사가 많을 것으로 알고 사전에 준비 하라는 뜻에서 전화를 한 것인데아울러서 둘째셋째형과 막냇동생한테까지도 어머님의 기일임을 알리라는 무언의 신호다나는 집안의 대소사가 있으면 늘 큰형님의 부름을 받아 미리 가서 일을 도우면서 두 형의 우스갯소리 섞인 잔소리와 막냇동생의 철없는 이야기를 들어가면서 제사 모실 준비를 하는데모두들 그런대로 내 말은 잘 들어주어서 일 하기가 편했다.

  내 일이 아무리 바빠도 나는 큰형의 말을 단 한 번도 거절한 적이 없었다큰형은 약주는 과했지만 인정이 많고동생들이 형의 과음에 핀잔을 주어도 야릇한 미소로 얼버무리고 만다옛말에 장형은 아버지의 대신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어머니께서 저에게 늘 잔소리처럼 말씀하신 가르침이다.

  나는 주말행사를 마치고 큰형님이 말한 시간보다 두세 시간이나 먼저 아내와 함께 생전에 부모님이 기거하시던 아파트로 올라갔다큰형님의 아들인 장조카가 작은아버지인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예전에는 할 일에 대한 지시를 해야 그것도 마지못해 움직이던 조카들이 요즘에는 철이 들었는지 그날은 병풍과 제상 등을 미리 챙겨 놓고작은아버지들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니 내심 기분이 좋았다.

  나는 생전에 아버지가 늘 자리하시던 기다란 소파에 앉아 장조카에게 이런저런 할 일에 대한 지시를 했다지방이며 할머니 영정사진은 어디 있느냐며 잔소리를 해도 장조카는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고 고분고분 내 말을 잘 따라 주었다.

  예전 같으면 이런 일은 다 아버님이 하시던 일인데돌아가신 뒤로는 가방끈이 조금 길다는 의미인지 조상의 시제나 제사 때가 되면 축문을 읽고 잔을 올리는 일이 다 내 몫으로 돌아왔는데괜한 말이 아니라 조상의 제사 모시는 일만은 꼭 내가 맡고 싶었다.

 

 나는 한글과 한문의 중간세대이다대학시절 교수님의 매서운 가르침으로 한자를 읽는 데에는 별 지장이 없지만쓰는 것이 서투른 데다 더구나 지방(紙榜)은 특수한 격식의 글이어서 생소해 인터넷을 뒤져 顯妣孺人長水黃氏 神位라는 문구를 찾아 정성들여 쓴 다음 7남매와 조카들 오기만을 기다렸다.

  시간이 되자 서울에 계신 누님을 필두로 여섯 명의 자녀가 차례로 모여 들었다그런데 7남매 중에 둘째형이 아직 보이지 않았다예전 같으면 빨리 전화하라는 아버님의 불호령이 떨어졌겠지만우리 형제들은 스스로 찾아올 때까지 묵묵히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마침 그때 문밖에서 허겁지겁 둘째형이 달려왔다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형편이고 보니 통닭 한 마리 배달 때문에 늦었다며 계면쩍어하고 있었다늦기는 했지만원근 거리에서 7남매가 다 모일 수 있었다는 것은 평소 아버님의 엄한 가르침 덕분이 아닌가 싶었다.

 

  자정이 넘어 철상을 한 뒤 둘째형이 어머니의 영정을 보면서 어머니 내년부터는 큰형 식당에서 모실 테니 잘 찾아오십시오.” 했다큰형으로서는 미안해서 말을 못해 바로 아래 동생이 지난 수년간 형수님의 노고에 대한 고마움이라도 말하듯 인사를 했다.

  넷째인 나는 부모님과 함께 살던 이 아파트에서 제사 지내기를 희망했는데세월의 흐름에 따라 간소하게 그리고 장형이 편하게 모시는 대로 따라가기로 마음먹었다아버님이 살아 계셨더라면 당치도 않은 말이라며 호통을 칠 일이지만세월 따라 변하는 인심에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지난 이야기지만 아버님은 조상에 대한 예의는 깍듯하여 자식들이 본받아야 할 점이다.  큰형은 기독교 신자이면서도 언제나 제사상은 차렸다그런 모습이 동생인 나에게는 정말 고맙게 생각되었다.

  철상을 한 뒤 우리 가족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오순도순 정담을 나누며 늦은 저녁식사를 마친 뒤 둘레둘레 모여 앉아 술 한 잔씩 하면서 화투놀이도 하며 형제간의 우애를 다진다아버님이 계셨더라면 소파에 앉아서 다 똑같은 자식이라도 뇌졸중으로 쓰러져서 늘 손이 불편한 큰아들의 화투놀이 훈수라도 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니 그 옛날의 아버님 모습이 새삼 그립다부모님은 많은 자식들 중에 큰아들을 많이 생각하셨다부모님이 앉아 계셨던 그 소파그 텔레비전은 이제 주인을 잃고 자식들의 차지가 돼버렸다.

  아버님의 기일과 어머님의 기일이 정확히 반 년 차이다그러다 보니 우리 형제들은 아무리 바빠도 한해 두 번은 만나 서로의 안부와 우애를 다진다아버님은 둘째이지만큰어머님의 반대로 어쩔 수 없이 조상님 봉제사를 비롯해 집안 대소사를 아버님이 맡아 해 오시다가 떠나셨다어머님의 뒤를 따라 얼마 안 되어 아버님도 떠나셨고, 지금은 큰형,막내도 뒤를 따라 하늘 나라에 가셨다부모님의 떠나가신 자리가 비어 있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제삿날 둘째형이 통닭 배달로 좀 늦더라도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앉아 기다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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