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22-02-01 16:05
안녕하세요?
코로나 블루를 극복하기 위해
내가 가진 힐링 에너지를 이웃에게 무료로 나누는 행복백신 코너입니다.
이 코너는 시청자님들이 보내주신 글을
국제웰빙전문가협회 행복 코디네이터 본부에서 제작한
대국민 정신건강증진을 위한 ‘나do 너do 우분투’ 프로그램입니다.
오늘 글은
1982년도 KBS공채 탤런트 9기 출신인
정서임 행복 코디네이터 책임교수님이 보내주신
행복인문학에 충실한 행복백신입니다.
KBS TV문학관, KBS 주간드라마 등에서
주연배우로 명활약을 하셨던 멋진 정서임 책임교수님!
전국노래자랑 가수로도 활동하는 정서임 책임교수님!
새해에는 더 멋진 활동을 기대합니다.
자! 그럼 감성을 톡 톡 건드리는 알콩달콩한 감성 동산으로 쑥 빠져 들어가 볼까요?
지금부터 약 50여년 전의 일입니다.
산골짜기의 아주 가난한 소작농 장녀로 태어나서
초등학교도 다 마치지 못한 10살에
도시 부잣집에 팔려가서 식모살이 인생을 시작한
가련한 한 소녀의 이야기입니다.
이 소녀는 부잣집 식구들의 괄시와 수모를 겪으면서
이를 악물고 돈을 벌기 시작했습니다.
매달 받는 월급 1만원...
그렇게 10년간 온갖 구박을 받으며 모은 돈은
시골집으로 꼬박꼬박 몽땅 보내졌고
남동생들의 학비와 용돈이 되었습니다.
그토록 먹고 싶었던 10원짜리 뽀빠이 한봉지도
20원짜리 자야 한 봉지도 사먹지 않고
생명과 바꾼 돈을 몽땅 집으로 보냈던 겁니다.
소녀가 자라 처녀가 되어서도 그랬습니다.
봉제공장에 취직하여 하루 18시간 이상
재봉틀에 앉아 10여 년 넘게 고달프게 일했습니다.
그렇게 관절염에 걸리면서 받은 월급도
매달 어김없이 시골집으로 모두 보냈고
그 돈으로 동생들은 고등학교까지 마쳤습니다.
그토록 먹고 싶은 통닭 한 마리도
자장면 짬뽕 한 그릇도 사먹지 않고
다른 친구들처럼 파마비가 아까워
직접 거울을 보며 단발머리로 직접 싹뚝 자르고
낡고 낡은 청바지에 티셔츠 하나로 살며
자기를 위해서는 철저히 근검절약하며 모은 돈을
집안 기둥이라는 남동생들 뒷바라지를 위해
이를 악물고 보내며 버텨냈던 겁니다.
어느새 나이 서른에 접어든 처녀는
결혼도 포기해 버렸습니다.
자기만 성공하겠다는 이기심에 찌든 남동생들이
늙고 가련한 부모님을 방치하듯 해 버렸고
그 부모님도 떠안고 독박 효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부모 생계비 병원비도 몽땅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자기를 희생하는 세월을 살다보니
남동생들은 모두 크게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큰 동생은 의사도 되고 부잣집 딸과 결혼했고
도시 한 복판에 번듯한 내과의원도 차렸습니다.
둘째 동생은 변호사가 되어 서울시청 앞에 개업했고
제법 유명하다는 소문도 얻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셋째 동생은 가구점에 취직하여
겨우 자기 용돈만 벌고 있었습니다.
의사 동생 부부는 돈을 모으는 대로
병원을 확장하며 부모님을 잊고 살았고
변호사 동생은 의뢰인들을 변호하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부모님 생일도 까마득히 잊고 살았던 겁니다.
그러다보니 늘 명절이 되면
묵묵히 일평생 일만하며 살아온 큰 딸과
막내 동생만이 부모님과 함께 했습니다.
가구점에서 일하다보니 수시로 손과 팔을 다쳐
온통 빨간색 아까징끼를 바르고 반창고 투성이인
가련한 막내 동생만 늙은 부모님을 섬겼던 겁니다.
그렇게 살아가다 보니
그 처녀는 50대 중반이 되었습니다.
어느날 일터에서 평소처럼 미싱을 밟던 그 여인은
갑자기 악 소리를 내며 쓰러져 기절했습니다.
동료들에 의해 119를 타고 병원에 실려 갔고
의사에게 청천 벽력같은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위암 말기라고!
당장 위를 잘라내야 한다고!
그러면서 의사는 말했습니다.
위를 절제하면 살 수 있으니
당장 수술비 2천 만원을 준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수중에 저축한 돈이 없는 그 처녀는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주저하다가
결국 큰 동생인 의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물론 변호사인 남동생에게도 전화를 했습니다.
자신이 병원에서 위암말기 진단을 받았다는 것과
수술비 2천만원이 당장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큰 누나의 소리를 들은 두 동생은 펄쩍 뛰었습니다.
병원을 확장하다 보니 돈이 없다고 했습니다.
변호사 일도 안되어 저축한 돈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바쁘다면서 찾아오지도 않았습니다.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사흘이 가고...
병원의 재촉을 견디다 못한 여인은
겨우 제 밥벌이나 하는 막내에게 전화 했습니다.
막내 남동생은 펑펑 울었습니다.
남동생은 집주인을 만나 누나의 딱한 사정을 전하고
간신히 전세금 전부를 돌려받아 급히 달려왔습니다.
그러나 전세금 1000만원으로는 어림이 없었습니다.
막내는 원무과 직원에게 매달리며 애원했습니다.
나머지는 꼭 갚을테니 수술부터 해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그러나 병원에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잘 알게 된 여인은
병실 간이의자에서 곤히 잠든 막내를 보면서
눈물의 유서를 남겼습니다.
딱한 막내에게 큰 짐이 되는 것이 싫었던 것입니다.
여인은 유서를 고이 잠든 막내 머리맡에 두고서
조용히 병원을 나와서 도로로 달려들어
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여인은 안타까운 생을 마감한거지요.
장례가 끝나고 보험사에서 찾아왔습니다.
그 여인이 죽기 전에 생명보험을 들었고
수익자로 막내 남동생을 지정했기 때문입니다.
엄청난 금액의 보험금을 알게 된 두 형은
막내에게 같이 나누자고 협박을 했습니다.
막내는 누나의 목숨값이니 안된다고 했지요.
결국 이들은 법정소송으로 갔습니다.
판사는 여인의 휴대폰 녹음을 들려 주었습니다.
휴대폰에는 이런 내용이 녹음되어 있었습니다.
“고맙구나 막내 동생아!
네 형들은 모두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내 병원비를 한 푼도 내주지도 않았고
달려와서 위로해 주지도 않았다.
그러나 가난한 너는 전세까지 빼다가 주었구나!
누나는 수술해도 오래 못살거 같다.
그러니 수술 안하고 죽는 것이 나을것 같다.
내 사망보험금은 막내 너에게만 남긴다.
이 누나를 기억해 주어서 참 고맙다.
사랑하는 내 막내 동생아!“
1970년대 산업화 시대에
공순이 공돌이의 고달픈 삶을 살았던
우리 누님들과 형님들....아저씨와 아주머니들...
우리는 절대로 이분들을 꼰대라고 부르며
무시하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당신의 오늘이 있기까지
당신에게 도움을 베푼 많은 분들을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당신을 당신답게 하는 것 아닐까요?
지금까지 행복 코디네이터가 보내 드리는 행복 백신이었습니다.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면 행복 코디네이터 책임교수에게 보내주세요.
국제웰빙전문가협회 홈페이지 커뮤니티에서 ‘행복백신공유’ 게시판에 남겨 주셔도 됩니다.
글을 올려주셔서 채택되면 행복 코디네이터 인턴 수강권도 드립니다.
유투브에서 조회수가 많은 글을 주신 분께는 연말에 국제웰빙대상도 드립니다.
행복백신 나눔운동은 다함께 잘 살기 운동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