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뉴스

여수지역독립운동가유족회, 이달 20일 독립유공자 이선우 선생 기념 행사 개최

작성일 : 2023-02-09 11:13


 

국제웰빙전문가협회 전남권 행코교수단 회장 조옥성 행코 책임교수는 "오는 20일 여수지역독립운동가유족회가 여수 장날에 만세운동을 일으키기 위해 위친계(爲親契)를 조직하여 활동하던 중 발각되어 옥고를 치렀던 이선우 독립유공자 기념행사를 개최한다"고 사무국장으로서 소개했다.

 

1919년 9월 여수로 귀향한 유봉목(兪鳳穆)은 이선우를 만나 청년회를 조직하여 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논의하였다. 이선우, 유봉목 등은 12월 여수 간이수산학교(簡易水産學校) 기숙사에서 수산학교 학생 김동렬(金東烈) 등 5명을 만나 이들과 함께 여수보통학교와 수산학교 재학생,졸업생 중 적임자를 뽑아 위친계를 조직하여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하였다. 12월 18일 종포(鍾浦) 박종종(朴宗鍾)의 집에서 하재학(河在學) 등 40여 명을 규합한 이선우 등은 여수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하고 12월 21일 여수 장날에 오전 10시를 기하여 거사를 단행하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이선우 등은 읍내 덕충리(德忠里) 김여진(金汝珍)의 집에서 태극기를 만드는 등 거사를 준비하였으나, 19일 계획이 발각되어 이선우 등 3명이 붙잡히고 태극기 120장을 압수 당하였다.

 


 

이로 인해 이선우는 1920년 2월 26일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청에서 소위 대정(大正) 8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14년 3월 이천서씨 성록공의 장녀 본덕과 결혼 이남 상모와 상조를 두셨다.

 

그러나 때는 국운이 쇠퇴하여 일제 침략이 노골화 됨에 선생께서는 새로운 문명을 탐구하여 국민계도 만이 순국지도라고 자각하시고 1919년 여수보통학교를 거쳐 여수 간이수산학교에 수학 중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됨에 국권이 강탈당한지라 선생께서는 우국상정으로 분연히 일어나 동기 유봉목 선생과 학생 30여명을 규합하여 거사를 도모하고 총검앞에 독립만세를 외치시다가 불행히도 일경에 체포되어 대구형무소에서 6개월 형의 선고로 옥고를 치르시고 석방한 후부터는 요시찰인으로 감시를 받아왔으나 거기에 굴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애국애족의 일념으로 민족정신을 환기시켜 국권회복을 이룩하기 위하여 적수공권으로 1922년 소라면 현천에 현천학원을 1926년 쌍봉면 학용에 쌍봉학원을 1931년 미평동에 보성학원을 설립하여 20개 성상에 걸쳐 농촌자녀교육에 심혈을 다하여 왔으며 많은 인재를 양성하는데 공헌하신바 크다.

 


 

광복 후 1946년 소라국민학교 설립과 동시에 독립유공자로 인정하여 초대교장으로 추대되셨고 1947년 여수수산고등학교로부터 독립유공자로 명예졸업장을 받으셨다. 그러나 인생은 유한하여 1961년 5월 정년 퇴임 후 숙환으로 신음하시다가 애석하게도 62세를 일기로 많은 정을 남기신채 홀연히 떠나셨다.

 

이선우  손자 이동희님은  작년에 이어 2023년 2월 20일에도 104개  태극기를 달고  선조들의 얼과  3.1정신의  뜻을 널리  기린다고  했다.

 

행복뉴스 이전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