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23-04-21 06:49
즐거웠던 동창회와 그 친구
수필가 조 옥 성
해마다 연말이 되면 우리 주변에서는 송년회 겸 동창회 모임을 가지는 것을 보게 된다. 도시에서 생활하다 보면 누구나 이런 모임에 참석하여 멀고 가까운 친구들과 만나 적조했던 그 동안의 이야기를 나누며 분주했던 한 해를 보내기도 하지만, 마음을 활짝 열어놓고 격의 없는 정담을 나누는 자리가 됐으면 하는 마음 간절했다.
내 고향은 작은 섬이지만 초등학교가 셋이나 되었다. 그러다 보니 같은 또래끼리 오랜만에 그런 자리에서 만나면 어쩐지 서먹서먹했다. 그래서 학교는 달라도 72년도에 입학한 동기동창들의 연중행사로 우리는 매년 한 번씩 모였다. 세 군데 초등학교가 하나로 합쳐진 동창회 총무를 맡고 있는 나로서는 그래서 행사 때마다 늘 긴장이 되고, 걱정도 많았다.
그러던 중 이번 동창모임 전날 밤에 한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 ‘72초도(草島)초딩’ 모임은 색다르게 기획을 하라면서, 먹고 마시고만 끝낼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뜻있고 아름다운 추억을 남길 수 있는 행사가 되도록 친구들의 마음을 하나로 뭉쳐보자는 전화였다. 총무를 맡고 있는 나로서는 회원들의 의견을 들어 좋은 행사를 준비하는 것이 나의 당연한 책무이고 보니 좋은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바로 회장에게 전화를 했더니 모든 것을 전적으로 자네에게 위임하니 알아서 하라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초등학교 졸업 후 45년 만에 참석하는 동창친구도 많다고 하여 나로서는 더 긴장이 되었다. 하지만 영원히 잊지 못할 어린 시절의 그 코흘리개 친구들을 만난다는 생각에 내 마음은 벌써 동심으로 돌아가 가슴이 두근거렸다.
옛 친구들을 만나면 시간에 구애됨이 없이 철없이 즐거웠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며 잠시나마 우리의 마음을 고향의 품속에 머물도록 해보자는 생각으로 구기 종목을 비롯하여 제기차기, 딱지치기, 자치기, 구슬치기 등과 명랑운동회 게임을 준비하여 함께 웃고 즐길 수 있는 방향으로 프로그램을 짰다. 그런 기획에 따라 하루 전까지 종합점수판과 플래카드 그리고 전문MC 섭외와 음향기기의 준비도 완벽하게 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참석인원이었다. 잔치는 벌여놨는데, 객이 없으면 허망할 것 같아 지금까지 동창회에 한 번도 참석하지 않은 친구들에게 문자도 보내고 전화도 했더니 다행히 많은 친구들이 쾌히 참석하겠다는 회답이었다.
행사 하루 전 피로에 지친 토요일 아침에 나의 달콤한 늦잠을 깨우는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어릴 때부터 ‘왜소발육증(난쟁이)’ 때문에 친구들한테 따돌림을 당했던 강창우 친구의 전화였다. 그는 대뜸 ‘나는 친구모임에 가고는 싶지만, 회비가 없어서 참석하기 어렵겠다.’는 사연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친구의 속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에 자네는 동창회 모임 때는 장학생이니까 회비 걱정은 조금도 하지 말고 참석하라고 했더니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잠시 후에 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는데, 이는 아까 그 친구가 모임장소를 묻는 전화였다. 장애를 앓고 있는 그 친구가 그 동안 얼마나 친구들이 그리웠으면 이렇게 좋아할까 싶어 안쓰러운 생각에 모임장소의 약도를 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나는 행사 당일 일찍 일어나 오랜만에 만날 친구들을 맞이하기 위해 정장을 하고 체육관에 나와서 꼼꼼히 행사준비를 한 다음 행사장으로 갔더니 이 친구는 벌써 체육관 행사장에 나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눈 다음 자네는 몸이 불편하니 잠자코 입구에 앉아 있으라고 했더니 그 친구는 막무가내로 뭐 도와드릴 거 없느냐면서 앞장을 섰다.
그와 나는 경기장의 준비를 다 마치고 나서 아득히 흘러간 초등학교 때의 학창시절을 회상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저 멀리서 들어오고 있는 한둘의 친구들 얼굴이 보였다. 몇 년 만에 보는 친구들의 얼굴이 생소하기만 했는데, 이 친구는 친구들의 이름까지 하나하나 기억하고 있었으니 정말 놀랐다. 그래서 나는 그 친구에게 참석하는 친구들을 오는 대로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이름을 체크하여 세 팀으로 편을 나누라고 했더니 아주 꼼꼼히 잘 수행했다. 오픈 경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경기가 끝날 때까지 경기장 한쪽 자리에서 경기를 관람하며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대견스럽고 한편 안쓰럽기도 했다. 길가에 서 있는 인간우체통이 되어 임무를 잘 수행하였다.
1부 행사를 마치고 2부 행사에도 끝까지 이 친구와 함께 행동하기로 했다. 친구는 기분이 좋았던지 술도 한 잔 하고, 어렸을 적 친구들의 재잘거리는 옛이야기를 들으며 몹시 즐거워했다.
모두들 흥겨운 분위기에 한껏 부풀어 있을 때 이 친구는 혹시 실수라도 저지를까 싶었는지 먼저 가야겠다면서 바쁜 걸음으로 나가는 것을 보고 옆에 있던 친구가 택시비를 건네니까 한사코 거절하면서 모처럼 친구들을 만나 즐거웠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도망치다시피 달려 나가 택시에 올랐다. 장애로 몸은 불편하지만, 착하기만 한 그 친구가 탄 택시가 안 보일 때까지 우리는 서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 회비가 없어서 모임에 참석하지 못하겠다고 하던 그 친구의 풀죽은 목소리가 내 귀에 오래도록 이명(耳鳴)으로 울려오고 있었다.
<수필가 소개>
국제웰빙전문가협회 행코문학회 수필가로 등단한 조옥성 박사는 협회 산하기관인 한국강사총연합회 대표회장, 전남권 행코교수단 회장으로서 행복한 세상 만들기에 앞장서고 있는 행복 코디네이터 책임교수이다. 유튜브 '조옥성tv'와 '남해안신문' '국민기자뉴스' 등을 통해 다양한 정보로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 여수시체육회 사무총장 출신으로서 현재 여수시의 다양한 단체에서 활동하며 인재를 육성하고 있다.